푸름 아빠의 아이 내면의 힘을 키우는 몰입독서 


26p “ 아이들은 부모의 반응을 먹고 성장 한다 ”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눈빛 속에 아이의 미래가 있다. 


47p 내적불행은 적어도 5대 조상으로부터 증폭되어 후손에게 전달된다. 일제시대와 전쟁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한 많은 민족이라 불릴 정도로 축적된 민족의 내적불행이 현재의 우리를 지배하고, 무의식 속에서 우리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내적불행의 치유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때 비로소 일어난다. 


88p 72개월까지는 아이 인생의 80%를 투자하라. 

아이의 전 인생에 걸쳐서 100을 투자한다면 적어도 72개월 이전에 80을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말하는 투자란 아이에 대한 모든 사랑과 관심이며, 이를 쏟아 부어서 아이가 흡수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가능한 크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136p 어린 시절 특히 72개월 이내에 하이가 책 읽는 습관을 갖지 못하면, 그 이후에는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모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227p 수다쟁이 부모가 아이의 언어감각을 키우고 두뇌를 발달시킨다. 

어휘력의 차이는 곧 지성의 차이다. 아이의 지성을 이끌어 주고 싶다면 부모가 수다쟁이가 되어야 한다. 아이가 하는 것마다 무조건 “ 안돼! ” “ 하지마! ” 와 같은 부정적 언어를 자주 사용하면, 아이는 어떤 것에도 호기심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박사의 감정 조절 육아법

저자 오은영|코리아닷컴 |2016.05.15

19. 엄마는 커피를 마시면서 후회한다. ‘내일부터는 욱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막상 오후가 되어 아이를 만나면 비슷한 일이 또 반복된다. 해가 지고 잘 시간이 다가올수록 욱의 빈도와 강도는 강해진다. 

과연 엄마는 다음날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혼자 있는 시간에 한 반성은, 다시 혼자 있는 시간이 왔을 때 떠오른다. 아이와 있는 동안은 늘 어제와 똑같다. 아이 눈에 엄마는 항상 짜증내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도대체 왜 엄마의 짜증스러운 일상은 고장 난 라디오처럼 무한 반복되는 걸까? 


25.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내준다는 것은 더 사랑해주고, 더 이해해 주고, 더 참아주는 것이다. 나의 시간을 아이에게 내주고, 나의 체력을 아이에게 내주는 것이다. 


28. 사람에게는 감정의 그릇이 있다. 그 그릇에 부정적인 감정이 점점 차오르다가 별안간 분출 되서 나오는 것이 ‘욱’이다. 하나는 감정을 담는 그릇자체가 너무 작아서, 조금만 불편한 감정이 유발되어도 바로 분출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항상 짜증과 신경질을 달고 있다. 다른 하나의 감정의 그릇은 그렇게 작지 않아 평상시에는 제법 잘 참고, 온순한 성격으로까지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감정의 그릇에서 한 방울이 넘치면 ‘하이드’씨가 되어버린다. 


29. ‘내가 욱해서’ ‘내가 좀 다혈질이잖아’ 라고 하는 사람은 감정발달이 잘 되지 않은 것이다. 감정조절에 미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감정발달은 후천적이다. 보통은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학습된다. 

 욱은 딱딱하게 뭉친 감정의 덩어리다. 화도 있고, 부끄러움도 있고, 걱정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당황스러움도 있고, 고통도 있고, 불쾌함도 있고, 배고픔도 있고, 불편함도 있을 수 있다. 욱 안에는 너무나 다양한 감정과 원인들이 뒤섞여 있다. 


30. 부모가 욱하는 모습만 보고 자란 아이는 이 변연계가 무뎌진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에 무딘 아이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냥 좀 기분이 나쁘고 불편해지면 ‘욱’ 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 줄 알게 된다. 

아빠가 밥을 빨리 안준다고 엄마한테 소리를 지른다. 엄마는 아빠 못지않게 소리를 지른다. 아이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배운다. 뭔가 빨리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버럭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것이 맞는 줄 안다. 공격적인 감정은 강력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다른 감정보다 금방 배운다. 

불편했던 감정이 순간 확 나가기 때문에 속이 후련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자꾸 그 방법을 쓰게 된다. 평소 욱하던 사람이 욱을 참으면, 흡사 화장실 갔다 그냥 나온 것처럼 찜찜하다. 시원치가 않다. 그래서 계속 욱한다. 

그러나 아이 앞에서는 절대 욱해서는 안 된다. 욱하는 감정은 쉽게 배워지고, ‘욱’ 으로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정말 어렵다. 내 아이가 욱하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원치 않는다면, 어릴 때부터 부모가 철저히 모범을 보여야 한다. ‘욱’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은 온통 ‘자기입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내 감정만 중요하다. 


32. 아이 앞에서 욱하는 부모의 모습은 가끔 ‘어떻게 부모가 돼서 그렇게 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도덕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이렇게 되면 기질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아이도 점점 사나워진다. 어릴 때는 부모 때문에 생기는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처리해야할지 잘 몰라서 꽉 누르고만 있었는데, 그것이 사춘기가 되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때는 부모가 아무리 욱하고 혼내도, 아이를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아이 앞에서 하는 욱도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불필요하게 욱하는 것은 관계에 굉장히 파괴적이다. 

부모가 끊임없이 별것 아닌 일에 화내고 욱하면, 아이는 자신의 잘못에 비해 반응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떤 결정적인 일이 발생하고 섭섭한 마음이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부모를 안 보고 싶어 한다. 


35. 부모가 아이와 놀아주려는 것은 아이와의 정서적 상호작용을 잘해서 부모와 아이의 유대감을 높이고 아이의 정서를 키워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나중에는 부모가 서로 악다구니를 쓰면서 싸우고 있다. 아빠가 잘 놀아주는 것으로 아이가 얻는 것이 ‘10’이라면, 부모가 아이 앞에서 ‘아이 이름’을 거론하며 싸우는 것으로 잃는 것은 ‘100’이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 무척 어리석은 상황인 것이다. 


37.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만 꼽으라면, 기다리는 것과 아이를 나와는 다른 인격체로 존중해 주는 것이다. 잘 기다려 주려면 아이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욱은 성급한 마음에서 나온다. ‘욱’ 에는 기다림과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다. 우는 아이는 빨리 그쳐야 하고, 잘못된 행동은 빨리 고쳐야 한다. 무슨 말을 하면 빨리 알아들어야 하고, 지시하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욱하는 부모는 더 욱하게 된다. 


38. 그런데 아이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아주 천천히 배운다. 여러 번 가르쳐 주고 그것을 뇌에서 처리하기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스스로 체득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혹여 아이가 그 과정에서 기분이라도 나빠지면 못 배운다. 아이가 울면 기다려 줘야 한다. 아이가 하루 종일 울지는 않는다. 스스로 진정하고 마음을 추스르는 것을 경험해야 어떻게 울음을 그쳐야 하는지 배운다. 그런데 부모가 자꾸 ‘빨리’를 부르짖으면 그렇게 못한다. 

 욱하는 부모가 요구하는 ‘빨리빨리’는 민첩함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채근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의 마음이 불편해진다. 긴장감이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불안이 자극되고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 불편해진 것을 잘 소화하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불편해졌다가 불쾌해진다. 이 불쾌감은 짜증이나 화로 표현된다. 짜증이나 화가 많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2세가 지나면서 아이가 달라진다. 자기주장이 생긴다. 이때부터는 부모가 욱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 밑바닥에는 아이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아이가 독립적인 존재이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욱하는 것이다. 관계에서 상대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욱하는 것이다. 


39. 아이에게 욱하고 나서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이가 말을 안 들어요’ 다. 부부간에 욱하고 나서 많이 하는 말은 ‘말이 안통해요’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하지 말라고 하는데, 계속 하잖아요’다. 공통점은 결국 내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욱는 상대에 대한 제압의 의미가 있다. 상대를 감정적으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상대를 장악하고 굴복시키려고 했는데, 안 되었을 때 욱한다. 

 우리 부모들은 늦장을 부리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어떨 때는 엉덩이까지 때리면서 채근한다. 아이는 옷을 입긴 입어도 뭔가 기분이 나쁘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시간에 맞춰 빨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 


40. 욱하고 후회하는 엄마들을 보면 평소에는 아이한테 과도하게 잘한다. 아이가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원하는 대로 계속 읽어준다. 다섯 권만 읽어줘도 될 것을 열권 넘게 읽어준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별안간 ‘좀 그만해, 벌써 몇 권 째야? 두 권만 읽기로 했잖아!’ 하면서 버럭 화를 내 버린다. 이러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준 효과가 없다. 오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전해진 긍정적인 영향이 자기 전에 책을 읽어 주면서 뱉은 ‘욱’ 으로 마이너스가 되어 버린다. 단 한권이라도 엄마의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만 기분 좋게 읽어주고 말았으면 더 좋은 효과를 나타냈을 것이다. 

 스무 번 중에 열아홉 번은 친절한 엄마인데 한번은 광분한다면, 차라리 그 열아홉 번을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 한번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것이 아이한테는 훨씬 더 이롭다. 


41. ‘아이에게 절대 욱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육아의 가장 상위 레벨의 가치다. 아무리 시간과 돈, 체력을 들여서 최선을 다해도, 부모가 자주 욱하면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 좋은 것을 먹여주고 보여 주는 것보다, 욱하지 않는 것이 아이에게는 백배 더 유익하다. 


44. 정서 발달은 후천적이어서 감정조절 방식은 부모를 보고 학습하는 것이 크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그 이전의 부모로부터 ‘감정’을 보호 받지 못하고 자랐다. 


48. 의존욕구라는 것이 있다.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인정받고 보호받고 싶어 하는 욕구다. 아이는 부모에게서 ‘그래, 그렇게 느낄 수 있었겠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정서적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또한 어리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는 실수에 대해서 ‘아이니까 못하는 것은 당연해,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미숙함을 수용 받고 싶은 욕구다. 화가 났을 때 부모에게서 위로받고 싶고, 기대고 싶을 때 자신을 허락해 주었으면 좋겠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한다고 표현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의존 욕구다. 

 어린 시절 의존 욕구가 해결되지 않고 결핍된 채 남아 있으면, 이것은 성인이 되어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이 욕구를 채우려고 든다. 심지어 아이와의 관계에서마저도 끊임없이 무리한 기준을 세우고 요구한다. 그 나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인데도 ‘너 몇 살인데 아직도 이래?’하거나 ‘너 엄마가 이렇게 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알아 몰라? 알면 네가 하지 말았어야지’라고 다그친다. 

 의존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이든 남편이든 상대에게 ‘네가 나를 이해해야지, 내가 감정적으로 힘들면 네가 내 감정을 보호해 줘야지, 내가 위로가 필요하면 네가 위로를 제공해야지’ 라는 입장을 갖게 된다. 사실 그것은 부모로부터 받았어야 하는데, 그것을 아이한테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욱하고 짜증을 부린다. 


50. 어떤 부모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이한테 지나치게 소리 지르고 화를 내면서 키운다. 좋게 말하는 법을 못 배웠기 때문이다. 강하고 세게 해야 아이가 바뀌고 버릇이 고쳐진다고 생각한다. 


51. 왜 아이 앞에서는 그 상처가 드러나 욱하는 것일까? 그것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내 아이 앞에서 말이다. 

 첫째 이유는 꽁꽁 싸매 둔 문제는 가족만이 건드리기 때문이다. 가까운 가족 간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다시 가족 간의 관계에서 건드려진다. 바로 아이나 배우자다. 우리는 가족 이외의 사람 앞에서는 적당히 포장된 모습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가족 앞에서는 포장이 쉽게 찢어진다. 

 둘째 이유는 아이에 대한 지나친 자만심 때문이다. 내가 욱해도 내 아이는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자만한다. 

내가 낳은 아이니까 내가 선의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행동도 괜찮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아이가 나를 다 이해하고 용서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세 번째 이유는 아이가 사랑하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만만하기 때문이다. 나 없이는 못 사는 약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욱하는 것이다. 


60. 못 참는 아이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아이가 원체 예민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낯선 환경에서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못 견디거나, 오감이 불편한 환경에서 짜증을 많이 내는 아이들이 해당된다. 이 아이들은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말하기가 좀 어렵다. 이 아이들은 똑같은 자극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불편하게 느낀다. 그 강도가 너무 힘들고 괴로울 정도다. 그래서 자기를 좀 편하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이렇게는 못 살겠으니 빨리 날 좀 구해 달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성격이 급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충동적이고 산만해서 마음이 급하다. 급하기 때문에 지금 어떤 상황인지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가 업다. 

 세 번째는 부모가 참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르치지 않았거나 가르치기는 했는데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부모 또한 참지 못하는 성격일 때 그렇다. “ 야 너! 엄마가 지금 동생 맘마 주는 중이라고 했어, 안했어? 왜 잠깐도 못 기다리고 난리야?” 하면서 엄마도 화를 냈다면, 세 번째 원인에 해당된다. 

 만 2세 이전에는 설사 아주 까다로운 기질이었다고 해도 부모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이후 어떤 경험들을 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향방은 완전히 달라진다. 


66. 참고 기다리는 것을 가르치는 법은 아이의 말에 우선 반응해 줘야 한다. 엄마는 네가 뭘 원하는지 알았다고 한 후 지침을 줘야한다. 기다리는 훈련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아이라면 부모가 이렇게 말해도 아마 울고불고 할 것이다. 아이가 기다리는 동안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던 그냥 두어야 한다. 

 “너 조용히 안 해?” “시끄러워 죽겠네.” “너, 계속 그러면 위층 할머니가 내려온다.” “너 혼나! 엄마가 가기만 해 봐!” 이런 식으로 아이를 계속 자극한다. 큰아이는 계속 난리를 치고 있고, 작은 아이는 수유해야 하는 상황을 부모 역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모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참고 기다리는 것을 가르치려면, 그 경험을 시켜야 한다. 아이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눈도 흘겨서는 안 된다. 

“기다려줘서 고마워”라고 칭찬해준다. 이렇게 해야 하이가 ‘아, 엄마가 기다리라고 하면 그 시간이 될 때까지 내가 떼를 써 봤자 별 소용이 없구나 ’를 배운다. 또 잠깐이지만 10분이라도 기다려 보는 경험을 해 볼 수 있다. 

 부모가 기다리라고 하면서 아이를 혼내거나 협박하는 등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계속하면 아이는 같은 10분이라도 참고 기다리는 것을 배울 수 없다. 부모가 아무런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고, 폭력적인 언사나 행동도 하지 않을 때 아이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서로를 위해서 좀 기다리고 참아야 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74. 아이의 말에 반응해서는 안 된다. 광분을 하든, 날뛰든, 뒹굴든, 폭언을 하든 “기다려”라고만 하면 된다. “내일까지 기다려” 이렇게만 가르치면 된다. 참을성을 기르게 하려면, 아이가 그 상황을 겪고 견디고 넘어가게 해야 한다. 그 경험을 성공적으로 지나야 한다. 


78. 아이가 내 말을 잘 듣기 바라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와 아이를 분리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와 아이가 다른 몸이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겉옷을 입히고 싶다면, 가만히 앉아서 아이를 두 번 세 번 부를 것이 아니라 직접 가면 된다. 

 아이는 왜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까? 아이 또한 동물적인 본능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구속되고 싶어 하지 않는 본능이 있다. 자기만의 독립된 영역을 세우고 싶어 한다. 독립된 개체로 서길 바라기 때문에 과잉 통제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80. 말을 안 들어 녹다운 시켜놓고 부모에게 보호해 달라고 할 때 “ 말도 안 들으면서, 저 필요할 때만 찾아? 너 알아서 해”라고 반응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멀어지려고 할 때, “ 너 왜 이렇게 엄마 말을 안 들어? 왜 이렇게 엄마를 속상하게 해?” 라면서 지나치게 서운해 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아이는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81. 만3세가 지나면 아이의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싫어” “내가 할 거야”라는 말을 달고 살게 된다. 이것은 독립심을 키워가려는 아이 내부의 프로그램 덕에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의 눈에는 아이의 독립욕구가 그저 ‘고집’ 때로는 ‘똥고집’으로만 보인다. 


84. 아이는 왜 자기 확신감이나 신뢰감이 떨어질까? 첫 번 째 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아이 자체가 원래 불안감이 높은 경우다. 두 번째는 부모와의 관계 문제다. 엄마가 실수를 잘 허용해 주지 않을 때 그럴 수 있다. 엄마가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핀잔을 주고 혼을 내면, 아이는 당연히 엄마의 눈치를 본다. 자기 스스로 하고 싶어도 실수하면 본전도 못 찾기 때문에 엄마한테 자꾸 물어본다. 유아기에도 부모와 의논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있다. 그런 것은 “ 네가 알아서 결정하면 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라고 말해주면 된다. “ 너 그거 입고 가면 또 감기 걸려. 감기 걸리면 콧물 찔찔 나고, 열 펄펄 나고, 주사 많이 맞아야 해”라고 겁을 주는 엄마들이 많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 어린 아이 일수록 움츠러들어서 뭔가를 결정하는 데 확신을 갖지 못할 수 있다. 


89. 아이가 안 한다고 했을 때 부모가 “ 왜 안 해? 안하면 엄마도 너한테 아무것도 안 해 줄 거야. 너 그렇게 엄마 말 안 들으면 밥도 안 해 줄 거고”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굉장히 불필요한 반응이다. 지침을 주고 나서 아이가 진정될 때까지는 부모도 기다려야 한다. 


91. ‘오케이, 네가 해보는데, 이게 잘못 붙이는 것이면 그 다음 과정이 잘 안될 수도 있어. 그 때 화내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기다려 준다. 기다리면서 ‘아빠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라고도 한다. 


93. 부모는 안 사주기로 했으면, 끝까지 안 사줘야 한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든 울든, 드러눕든, 머리를 꽝꽝 찧든, 발을 구르든 안 사주는 것으로 끝까지 매듭을 짓고 가야한다. 이것은 뭐든 보이는 것을 다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중요한 교육이다. 


96. 밀기, 던지기, 때리기, 침 뱉기, 꼬집기, 욕하기, 소리 지르기, 큰 소리로 울기, 머리카락 잡아당기기, 할퀴기 등 공격적인 것은 늘 행동으로 표현된다. 

 첫 번째로 짚어볼 것은, 아이가 뭔가 억울하고, 분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황은 아닌지다. 집에서 지나치게 자주 혼나거나, 자주 맞거나, 엄마 아빠가 자주 싸우거나 무섭다면 아이 안에 화가 많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혹시 나에게 보고 배웠나’ 이다. 사사건건 화를 잘 내는 아이들을 보면, 많은 경우 부모가 아이보다 더 감정적인 감내력이 떨어진다. 둘 중 하나가 짜증이 많거나 자주 욱하거나 버럭 한다면, 아이는 불편한 감정이 생길 때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고 배웠을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혹시 내가 자극하고 있나?’이다. 예민하게 타고난 아이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감정적 자극을 잘 받는다. 그런데 이런 아이에게 부모가 끊임없이 지나치게 간섭하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99. 화나 분노라는 감정을 가졌다는 이유로 혼이 나고 벌을 받아야 할 것은 아니다. 아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존중되어야 하고, 공감되어야 한다. “그랬구나, 그런데 그럴 때 친구를 때리면 안 되는 거야”라고 공감해준 후에 어떤 상황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대해 가르친다. 

 “일단 말로 ‘내거니까 줘’라고 해 보고 그래도 안 주면 어른들한테 와서 얘기하면 돼. 어차피 집에 갈 때 놓고 갈 거야.”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난감은 저 상자에 넣어서 위에 올려놓자. 나머지 것은 같이 가지고 노는 거야” 

 “ 그렇게 하면 친구가 싫어해!”“그렇게 하면 선생님이 싫어해!” 라는 말은 좋지 않다. “안 빌려주고 싶으면 안 빌려 주고 싶다고 얘기해도 돼!” 라고 말해줘야 한다.

화는 공감으로 줄어든다. 어떤 잘못을 했을 때도, 먼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줘야 한다. “야! 동생 맞을 뻔 했잖아. 어디서 장난감을 던져?”라고 혼을 내기보다 “뭐가 잘 안 돼?”라고 해서 일단 아이의 기분을 알아준다. 기분이 안 좋았구나. 그런데 기분이 안 좋다고 물건을 던지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해준다. 화날 때는 ”엄마, 나 너무 화가 나 “ 라고 말로 표현해 보라고도 해준다. 


103. “말로 해야지, 때리면 안돼”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부모는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말로 가르치지 못하고 자꾸 ‘공격’으로 가르치려고 한다. 그러고는 자신은 아이를 교육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의 화에 너무 강하게 반응하면, 아니는 ‘내가 기분 나빠하고 화를 내면 엄청난 후폭풍이 오는 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 다음부터는 그런 감정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자기 안에 하나둘 쌓았다가 언젠가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때 한꺼번에 터트리게 된다. 그러다보면 아이는 점차 욱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107. 육아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덜 낸다. 육아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화가 많고 짜증이 많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화가 나고 욱한다면, 아이를 잡을 것이 아니라 나의 육아 방식에 이상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아이 탓이 아니라 내가 내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114. "저기 할머니가 뭐라고 하시잖아?“ ”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창피하지도 않아?“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입장을 고려하는 것은 만7세는 넘어야 가능한 일이다. 

 유아기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발달이 아직 미숙하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너가 그러면 사람들이 싫어하잖아?“ 라고 말하기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질서와 지침만 전하면 된다. 

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 아,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깨닫는다. 

공공장소에서의 중요한 육아 포인트는 첫 번째, 무엇이 되고 안 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두 번째,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은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가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쳐야 한다. 


123. 혼내고 화내고 성질내는 것을 교육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126. 아이가 삐져 있는 것은 불편한 감정을 소화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린다는 신호다. 그러니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것이 아이의 정서발달에 좋다. 


131. 아이가 악을 쓰면서 말대꾸를 해도 끝까지 들어야 한다. 말은 하고 살아야 하고, 말은 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아이가 입을 닫아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가르칠 수가 없다. 

 또래와의 갈등이 있을 때도 아이에게 “미안해”라는 사과를 매번 먼저 하라고 시켜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이렇게 키우면 정말 미안한 상황에서도 미안하다고 안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과하는 것이 불편하고 싫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135. “그런 마음이 드는구나. 어떨 때는 안가고 싶구나. 그래도 유치원은 가야해. 잘 다녀와. 대신 갔다 오면 재미있게 놀아줄게. 맛있는 것 해놓을게. 기대해 ‘라고 인사하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 된다. 


138. 예민한 아이에게 지침을 줄 때는 벽지를 바를 때 초배지를 바르고 벽지를 바르듯 해야 한다. “엄마가 너를 사랑하지만, 못 들어주는 것도 많아.” “엄마가 혼내는 거 아니야. 너한테 이걸 꼭 가르쳐 줘야 해서 말하는 거야. 엄마가 너를 사랑하지만, 이건 못 들어줘”라고 부드럽게 말한다. 


143. 아이가 고집을 부릴 때, 기를 꺾지 않으면 정말 아이를 평생 못 다루게 될까? 아이를 망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아이는 언제든 바뀌고, 언제든 배울 수 있다. 아이가 고집을 부릴 때 부모가 고민해야 할 것은 고집을 어떻게 한 번에 확실히 꺾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가르칠까 하는 점이다. 


148. 부모로부터 만족감이 떨어져서 징징거리는 아이의 경우 ‘ 엄마, 나 좀 봐 주세요’ ‘엄마 내 말 좀 들어 주세요’의 다른 표현이다. 하루 종일 징징댄다고 느껴지는 아이의 부모들은 대부분 하루 종일 ‘징징대지 말라는 것’으로 아이와 상호작용을 한다. 왜 징징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물어줘야 하는데, ‘또 징징대기 시작했네. 너 징징대지 말라고 했지? 예쁜 말로 하라고 했지?“한다. 핵심에서 벗어나 예쁜 말, 고운 말까지 쓰라고 하니, 아이가 계속 징징대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의 말은 듣지도 않고 ‘ 시끄러워서 못살겠다. 너 징징대는 거 징글징글해’하고 징징대는 것만 혼낸다. 하루 종일 징징대고 있다면, 하루 종일 뭔가 불편한 것이다. 


150. 일곱 살 밖에 안 된 아이한테 의젓한 언니나 형처럼 행동하라고 한다. 조그만 실수를 해도 ‘형아가 돼서 이게 뭐니?’ 한다. 이럴 때 부모에 대한 아이의 충족감은 확 떨어진다. 

 아이는 부모한테 끊임없이 뭘 요구한다. 물건을 사 달라고도 하고, 할 수 있는 일도 자꾸 해 달라고 한다. 뭔가 충족되지 않아 불안해서 하는 행동이다. 정작 자신이 채워야 하는 것이 정서적인 것임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요구적인 행동만 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리광을 부릴 때는 받아주는 쪽이 낫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사랑을 채움 받고 싶어 안기는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받아주면 아이는 다시 힘을 내서 제 나이에 할 일을 힘 있게 해 나간다. 


152. 잘 달래지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첫 번 째 는 워낙 예민한 아이다. 아이가 과민하면 부모 둘 중 한 사람이 과민한 경우가 많다. 두 번째 유형은 견디는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다. 세 번째는, 감정 조절 능력이 나이에 비해 떨어지는 아이다. 


156. 아이가 징징거리면서 울 때 빨리 멈추게 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아이에게 교육적이려면 그 감정을 겪게 두어야 한다. 스스로 진정되어 멈출 때까지 지켜보라는 것이다. 이 때 부모가 스마트 폰을 하거나 다른 것을 하면 안 된다. 감정은 스스로 정점을 찍고 스스로 내려 와야 조절 능력이 생긴다. 아이 옆에서 끊임없이 ‘그만하라고 했지? 너 혼난다!’ 라고 하면 아이는 감정을 참고 견디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 

 나의 20년 넘는 임상경험상, 며칠 씩 우는 아이는 없다. 다만 그것을 부모가 못 견디는 것이 문제다. 중간에 자꾸 자극을 줘서 울음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문제다. 


158. 아이가 달래지지 않을 대는 아무 말 없이 지켜봐 주는 것이다. 아이가 울거나 소리를 지를 때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달래지지 않는 아이는 스스로 진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만 목표로 삼아야 한다. 

 아이를 지켜볼 때 자리 이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 몇 번을 성공하면 그 다음은 수월하다. ‘내가 오늘 아이에게 이것을 꼭 가르쳐야 겠다’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아이가 울음을 그칠 동안 엄마는 움직이면 안 된다. 

 아이가 울음을 멈추는 것 같다고 밥을 하러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아이가 ‘가지 말라고!’ 하면서 다시 울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절대로 자리를 뜨지 말고 안정된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리를 지키는 부모 자체가 아이한테 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단호함이다. 단호하게 한다고 무섭게 해서는 안 된다. 단호함에서 무서움을 빼려면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마음에서는 혼낸다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아이들은 혼낼 존재가 아니라 가르쳐야 할 존재다. 


163. 차 안은 좁은 공간이다. 그런 장소에서 욱하면 거실에서 욱한 것보다 아이에게 가는 나쁜 영향이 최소 열 배는 더 크다. 

 사소한 것으로 욱하는 사람은 그 부분이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내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고집이 셀 가능성이 크며 본인의 자존감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173. 아이는 몇 시까지 준비하고 나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다른 사람이 불편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이가 서두르지 않는 이유는 정말 심플하다. 그냥 그게 더 재미있어서다. 

마음이 점점 급해진다. 너무 급해지면 미칠 것 같다. 미칠 것 같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부모는 그 감정의 덩어리를 아이에게 던진다. 일이 잘못된 원인을 아이에게 모두 귀결시키는 것이다. ‘너 때문에 늦었잖아. 너 이렇게 엄마 속 썩일 거야?“ 정말 이 모든 게 아이 때문일까?

 부모 입장에서는 이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것처럼 생각될지라도 아이 입장은 다르다. 빨리 안하는 아이가 얄밉기만 하다면, 그것은 ‘아이 입장’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아이가 빨리 빨리 안 해서 답답한 마음은 부모 안에 있다. 그 마음의 주인은 부모다. 밖에서 아이가 준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은 부모 안에서 만들어졌다. 

 부모가 욱하면 아이는 어떨까? 아이의 심정은 ‘내가 뭘?’이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 난리야?’ 하는 마음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상황이 잘 납득이 안 되는데, 혹은 정말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왜 단번에 ‘네’하기를 기대하냐는 것이다. 


177. 통제적인 육아태도를 가진 부모는 아이가 자기 말을 꼭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통제에서 벗어나거나 말을 안 듣는 것을 못 견딘다. 그런데 아이는 로봇이 아니다. 감정을 가진 인격체다. 


181. 많은 엄마들이 하는 실수가 있다. 8시까지는 기다려 준다고 해놓고 계속 채근하는 것이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중간 중간에 얘기는 해줘야 한다. 그러나 ‘8시 다 되어간다. 얼른 해’ 이 정도가 딱이다. ‘너는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할 것이 아니라 입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 


182. 데드라인이 있는 데 아이가 빨리 빨리 안 움직일 때, 과제를 수행해야 할 때 왜 욱할까? 가장 큰 이유는 조급함 때문이다. 조급해지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본인이 계획해 놓은 틀에서 벗어나면 당황스럽고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결과가 싫기 때문이다. 늦어서 누군가에게 한소리 듣는 것도 싫다. 이런 부모들은 아이도 자꾸 통제하려고 든다. 매사 ‘빨리해! 빨리빨리!’ 한다. 통제의 틀에서 벗어나면 조급해진다. 조급해지는 본질은 불안이다. 불안이 높아져서 불편해지는 것이다. 평가에 예민한 사람이다. 주변사람이 보는 눈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지나치게 걱정이 많은 것이다. 


184. 자주 심하게 혼나는 아이는 불안해진다. ‘이렇게 했을 때는 안 혼났지?’ 하면서 혼나지 않는 틀을 스스로 만들게 된다. 

 그냥 ‘잘했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칭찬이다. ‘잘했어’ ‘최고야’ 이런 말은 자칫 잘못하면 아이가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든다. 칭찬이 과하면 부모가 어떠한 결과나 조건에 관계없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생각이 안들 수 있다. 내가 잘해야만 예뻐하고 사랑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부모에게 지나치게 잘 보이려고 한다. 


193. 아이를 먹이는 것에 마음을 편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미각이 예민해 편식이 심한 아이는 대개 열 살 쯤 되면 많이 좋아진다. 잘 안 먹는 아이들도 잘 관찰해보면 뭔가 먹는 것이 있다. 흡수장애나 대사질환이 있지 않은 한, 뭐든 먹는 것이 있다. 목록을 만들어보면 의외로 종류가 많을 것이다. 그것 위주로 만들어주면 된다. 

 ‘네가 뭘 잘 먹는지 한번 보자. 매번 맛있게 먹었던 것은 적어 놔 보자. 엄마가 그것 위주로 요리해줄게.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얘기해봐.’ 귀엽고 예쁜 모양의 음식 사진을 쭉 붙여놓고, 아이에게 그 중에서 한번 골라 보라고 하는 것도 좋다. 


195. 따로 재우는 것으로 독립심을 발달시킬 필요는 없다. 독립심은 잠자는 것 말고도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키워줄 수 있다. 


197. 아이들에게 외모나 키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면, 신체 자아상이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아이한테는 ‘그냥 먹는 것은 즐거운 일, 잘 먹어야 잘 큰다’ 정도의 메시지만 심플하게 전달하면 된다. 


198. 지금 부모가 그렇게 몰두하는 먹는 문제는 성인이 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또한 잘 먹지 못한다고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성인이 되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성격이다. 성격이 나쁘면 문제가 많이 생긴다. 그런데 어릴 때 아이와 먹는 것으로 실랑이를 심하게 하면, 아이 성격이 나빠진다. 먹는 것으로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가 많은 일이다. 


200. 가족 내에서 한 사람이 지나치게 강하면 그 강한 사람의 말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라도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206. ‘하려면 제대로 하고,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마’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제대로 해야 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로 잘하지 못하면 할 필요 없구나’라고 생각한다. 아예 시도조차 안 하려고 든다. 결과보다는 열심히 하는 과정을 칭찬해야 하고 독려해야 한다. 


214. 우리가 아이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에 비난, 무시가 너무 많다. 아이들은 수시로 자존감에 타격을 받고, 자신감을 잃는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부모가 자녀의 능력이나 노력의 결과에 관계없이, 조건에 관계없이 늘 사랑한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둘째, 부모가 자녀 수준에 잘 맞추어 양육하고 있다고 스스로 느껴야 한다. 두 가지의 합이 자존감이 된다. 


218. 제대로 된 훈육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화가 나지 않는다.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욱’은 아이에게 폭력이다. 욱해서 훈육하나, 훈육하다 욱하나 모두 폭력이다. 

 때리는 것으로 때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 ‘동생을 때렸으니 너도 맞아봐’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220. 매로 아이를 다스리면, 아이는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을 겁주거나 때려도 된다’라고 배울 수 있다. 그렇게 돼서는 절대 안 된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강압이나 힘으로 때리거나 억압하거나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협박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훈육은 아이가 사회의 기본질서를 지키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이 행동을 계속 하게 되면 나중에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될 것 같을 때 하는 것이다. 

 “얘가 좋은 말로 해서는 말을 안 들어서” 이런 식으로 아이를 탓하거나 자기 행동을 합리화 한다. 화가 났다면, 아이를 때리고 있다면, ‘훈육’이라는 명칭만 붙였을 뿐이지 훈육이 아니다. ‘너 이리와. 너 오늘 맛 좀 봐 ’ 하는 심정일 가능성이 높다. 

 ‘넌 어리고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어른인 내가 더 잘 아니까 내 말을 들어’라는 식이다. 이것이 어떻게 교육인가? 지나치게 독재적이다. 


232. 공포감을 조성하는 협박은 훈육이 아니다. 훈육할 때 “왜 그랬어?”를 묻는다. 이런 질문은 훈육 과정 중에 할 일이 아니다. 훈육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질문이나 선택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무 많은 말을 주고받으면 안 된다. 


234. 아이를 훈육하는 것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식의 힘겨루기가 아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옳은 일, 옳지 않은 일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아이가 뭔가 배우려면 아이 스스로 이 상황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아이가 뭐라고 해도 ‘기다려’라고 두 번 정도 말하고 그 다음부터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이를 짓누르지 말고, 화내지도 말고, 한숨을 쉬어서도 안 된다. 가만히 쳐다보면서 기다려야 한다. 만약 훈육하는 상황에 택배가 왔어도 받으러 가면 안 된다. 전화가 와도 받으면 안 된다. 아이에게 지금 부모가 너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면 오직 그 상황에만 몰두해야 한다. 


236. 엄마가 봤을 때 그 표정이 약간 기분이 나쁘다. 그런다고 훈육하면 안 된다. 아이가 약간 삐져 있는 얼굴이긴 한데, 듣긴 듣고 있다. 그렇다면 그냥 얘기하면 된다.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그것까지 통제하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 내 마음에 딱 맞는 아이를 만들려고 훈육하는 것이 아니다. 


237. 부모가 아이에게 자주 주는 지침 중에 ‘고운 말을 써야지’‘예쁘게 말해야지“가 있다. 소리를 지르는 아이에게 이 지침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소리 지르지 마‘ 라고 가르쳐야 한다. 예쁘게 말하라고 가르칠 필요는 없다. 화가 나서 ’저것 좀 해달라고!‘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에 대고 ”예쁘게 말해야 엄마가 준다고 했지?“하면 안 된다. 아이는 그럴 수가 없다. 화가 나는 데 어떻게 말이 예쁘게 나가겠는가. 그럴 때는 ”소리 지르지 말고 말해. 엄마 들었거든“이라고 가르쳐 주면 된다. ”친구에게 예쁘게 말해야지“가 아니다. ”친구한테 소리 지르지 말고 말해“라고 해야 한다. 어떤 엄마들은 그 상황에서의 아이의 감정은 무시한 채, 수도 없이 ”예쁘게 말해. 다시 말해“ 라고 한다. 그다지 좋은 행동이 아니다. 


240. 축구를 보면서 아빠가 잠깐 기다려 라고 하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아빠 자신의 욕구를 먼저 채우겠다는 말이다. 


242. 의존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아빠들은 부모에게 지나치게 효자다. 충분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오히려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분리가 잘 된다. 분리되는 것이 아주 편하다. 


247. 육아는 끊임없이 나를 내주어야 가능하다. 의존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어렵다. 내주는 것이 힘들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가 되어서도 자신이 받지 못한 돌봄에 대한 결핍을 계속 느끼기 때문이다. 


248. 뭘 하더라도 부모 무릎에서, 부모 옆에서 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좋아서 그러는 것이고, 그래야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라서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러대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첫째, 반응이 무덤덤한 부모다. 부모의 얼굴 표정이 다양하지 않고 늘 비슷한 표정이다. 만약 부모에게 우울증이 있다면 더 그럴 수 있다. 


251. 느릿한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는 부모가 있다. 성격이 급한 부모다. “엄마가 해줄게. 빨리 하고 가자.” 이런 식이다. 아이를 다그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성격이 급한 부모와 마찬가지다. 실패나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을 단련시킬 기회가 없기 때문에 자기 확신감이 떨어진다. 아이는 조금만 어려워져도 금방 포기하고 “해 주세요” “나 이거 못해요”한다. 


271. 욱한 배우자의 감정을 미화하지 말라. “아빠가 힘들어서 그래. 피곤해서 그러니, 우리가 이해해야지” 라고 하며 어린 아이에게 다 큰 어른의 감정을 미리 알아차려서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말이다. 


272. 아이가 놀다가 뭔가 잘 안돼서 화가 났는지 장난감을 던졌다. 아이가 장난감을 던지는 것을 보고, 엄마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지금 아이는 자신이 장난감을 던지기는 했지만, 엄마가 소리를 꽥 지른 것에 더 많이 놀라 있다. 이럴 때 “장난감을 던지지 마”라는 가르침은 먹히지 않는다. 

 “ 많이 놀랐니? 아빠한테 놀아 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소리를 질러서 무서웠겠네. 엄마가 아빠한테 왜 소리 질렀는지 물어볼게. 어떤 상황이든 소리를 지르는 건 잘못된 거야.” 


273. 배우자가 너무 심하게 욱한다면,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 낫다. 화가 좀 누그러진 것 같으면,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아. 아이도 잘못했지만, 당신도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다시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해야 한다. 이때 배우자를 비난하거나 탓하면 안 된다. 이렇게 대화하면 다른 사람의 불편한 감정을 안전하게 다뤄 주는 법을 아이가 옆에서 배운다. 

 부부가 대화를 나눈 후, 배우자에게 직접 사과하도록 유도한다. “아까 당신이 그래서 나 좀 놀랐어. 아이도 놀랐을 것 같아. 놀랐니?” 라고 물어봐준다. 아이가 막 울고 있으면, 욱한 배우자에게 “놀랐구나. 아빠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라고 말하게 한다. 부모가 욱한 후, 아이에게 가는 나쁜 영향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지막을 안전하게 끝내는 것이다. 부모가 서로 화가 나서 욕을 하거나 누군가 나가 버리거나 냉전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이 어떠했든 마지막은 서로 감정적으로 상처 주지 않고 안전하게 끝나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이 지켜진다. 


275. 어른이 느끼는 감정적 감내력과 아이가 느끼는 감정적 감내력은 크게 다르다. 아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정보는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저장된다. 아이가 기억을 못 하더라도 “어제 우리 마트 갔잖아. 그때 엄마랑 아빠가 막 소리 질렀잖아. 엄마랑 아빠 생각이 좀 달라서 목소리가 커졌어. 그래도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해. 네 앞에서 소리 질러서 미안해. 다음에는 좋게 말할게. 미안해”라고 말해 줘야 한다. 배우자도 아이한테 “미안해”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아, 상황이 이렇게 정리되었구나. 다시 엄마 아빠가 잘 지내는 구나’하면서 편안해 한다. 


281. 인간에게는 누군가를 힘으로 눌렀을 때 느끼는 묘한 쾌감이 있다. 한번 아이를 체벌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것도 이런 쾌감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283.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다. 설사 부모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격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권리는 없다.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다. 


293. 내가 일상을 살면서 어떨 때 공통적으로 욱하는지를 적어본다. 어떤 일이 나를 유독 욱하게 하는지 파악했다면, 그 때부터는 나의 삶과 연결을 시켜봐야 한다. 그래서 그 상황이 되도록 일어나지 않게 미리 조치해야 한다. 허기가 졌을 때 아이한테 더 욱하게 된다고 하면, 주변에 빵이나 과자를 놓아둔다. 

 내가 화를 내서 아이의 태도나 감정을 조절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되는지를 끊임없이 배운다. 정말 끊임없이 배운다. 


294. 내가 일상에서 유독 욱하는 상황들을 적어보았다면, 이제는 그 상황에 내가 보이는 공통된 반응들, 같은 패턴의 반응들을 써 봐야 한다. 이런 것들을 일상에 습관화 하면 나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이 자체만으로도 욱하는 감정이 많이 줄어든다. 


299. 우리의 감정적 에너지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잘 분배해야 한다. 덜 중요한 것에는 의미를 덜 부여하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중요한 것에 써야 하는 감정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린다. 


316. 밥을 차려놓고 먹기 전 ‘맛있게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 기도를 드려보자. 종교가 없더라도 이런 기도는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자아성찰 교육이다.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중에 잘못한 일이나 후회가 되는 일을 생각해보라고 하는 것도 좋다. 자기반성 습관은 욱을 줄일 뿐 아니라 자기 발전에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 


318. 부모들은 아이를 기다리는 것을 화를 누르고 참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육아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한 것을 참아 준다고 생각하면, 순간 욱하게 된다. 참아 준다고 생각하면 내가 아이에게 굉장한 희생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참고 참다가 ‘이젠 도저히 못 참겠어’가 되는 것이다. 육아에서 아이를 기다린다는 것은 ‘참아주는’것이 아니다. ‘기다려 주는’것이 아니다. 당연히 ‘기다려야만’하는 것이다. 매번 신경질을 내면서 말하는 아이라면 ‘좋게 말해. 화내지 말고’ 이 정도로 여러 번 지도해준다. 어떤 감정도 싣지 않고 여러 번 개입한다. 


325. 부모가 아이를 훈육하는 상황인데, 아이가 부모의 지시를 듣지 않으면서 자꾸 안아달라고 하면 그때는 안아 주지 말아야 한다. 이 상황을 자기 통제 안에서, 부모가 자기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끝내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고집쟁이나 떼쟁이들이 부모를 이겨 먹을 양으로 자주 쓰는 방법이다. 아이가 부모가 좋아서 안아 달라고 하거나 너무 피곤해서 안아 달라고 할 때는 안아 주어야 한다.


326. 부모와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는 그리 엄하게 하지 않아도 훈육이 잘 된다. 아이를 훈육하는 것이 잘 안된다면, 지금 나와 아이의 애착이 불안정하다면, 어떤 훈육의 방법을 찾는가가 먼저가 아니다. 애착부터 안전하게 형성해야 한다. 


331. 일등을 해왔을 때도 ‘잘했어. 엄마가 보니까 네가 예전보다 훨씬 더 노력하더라. 노력의 결과네’ 이 정도의 반응이 좋다. 자기 실력을 길러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일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 우리 아들 최고야, 최고!’ 라는 말만 반복하면, 아이는 일등만이 자기 모습인 줄 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신이 인정을 못 받는 것 같고, 사랑을 못 받는 것 같다. 잘해놓고도 오히려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긍심이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아이가 힘들어서 표현하는 불편한 감정에 부모가 공격적이고 과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 가지 상황에서는 한 가지 이슈만 다루는 것이다. 


334. 예절교육과 인성교육 모두 부모에게 배운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감정을 배운다. 아이는 모방의 천재다. 아이는 부모의 말에서 배우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가 보여주는 행동에서 배운다. 매일매일 행동으로 생활 속에서 몸에 배게 해 줘야 한다. 


338.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서 세 가지 다짐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첫째,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욱하지 않겠다.

둘째, 아이는 절대로 예쁘게 말을 듣지 않는다.

셋째, 가르친다고 혼내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다. 

오늘 하루 이 세문장만 잘 지켜도, 오늘 하루 아이를 잘 키운 것이다. 


339. 아드레날린이나 코르티솔 같은 분노와 관련된 여러 가지 호르몬 수치가 가장 절정이 되는 시간이 약 15초이다. 욱해서 뚜껑이 열려 ‘야!’하고 아이한테 소리를 지르게 되는 시간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대략 15초라는 것이다. 15초만 참을 수 있으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함께 15초를 참을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습득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340. 1) 입술 깨물기- 신체에 통증을 줘서 의식을 깨워야 한다.

2) 아합~~ 숨 들이마시며 합죽이 되기- 숨을 들이마시고 30을 세고 난 후 크게 숨을 내쉰다.

3) 늘 하던 방식과 반대로 행동하기- 소리를 지를 것 같다면 귓속말로 한다. 욱해서 눈을 부릅뜰 것 같다면 눈을 감아 버린다. 

4) 내 ‘욱’에 엉뚱한 행동 더하기

5) 생리 전 증후군 치료하기 - 실제로도 아이에게 하는 말을 대폭 줄이도록 노력한다.

6) 급한 마음의 속도대로 방에서 뛰기 - 헛둘헛둘 하면서 방에서 뛴다. 

7) 감정일지 쓰기 - 날마다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자세히 적어보는 것은 감정조절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 연습이 되면 이후에는 써보지 않아도 내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쉬워진다. 

8) 오늘의 짜증정도를 알고 있기-‘어휴, 내가 요새 짜증을 많이 내는구나. 자칫 욱할 수도 있겠구나. 조심해야 되겠네. 웬만하면 짜증을 내지 않도록 해야지’ 라고 미리 생각만 해도 욱하는 횟수를 줄일 수 있다. 

9) 평소 마음다지기 - ‘내가 미쳤지, 미쳤어. 자식 잘 키우려고 하면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라고 혼잣말이라도 한다. ‘욱하면 내 손해다. 불행의 문을 여는 거야. 절대 폭발하지 말자.’ 이렇게 평소에 김을 빼면 훨씬 낫다. ‘욱’하지말자’라고 마음을 다지면 정말 욱하는 횟수가 준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저자 수클리볼드 / 역자 홍한별 
출판사 반비 
출판일 2016.07.15

원저 A Mother's Rockoning 


참으로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 책장을 열었다. 1999년 4월 20일,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는 뉴스다.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13명이 사망했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가해자 두명은 그 자리에서 자살을 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엄마가 써내려간 이 책은 읽는 내내 엄마인 나의 가슴을 후벼팔만큼 그녀의 후회와 슬픔, 사랑과 절망의 감정들이 너무나 섬세하고 짙게 표현되어 읽는 내내 마치 내 아이가 저지른 사건인양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청소년기의 감정, 자살 충동과 우울증, 가해자의 가족에 대한 태도 등 더 깊게 고민하고 싶은 내용이 많은 책이지만 이 글에서 '완벽한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녀를 인터뷰한 심리학자 앤드루 솔로문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결함이 드러나면 언제나 사람들은 모두 부모를 비난해 왔다 (중략)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부모의 태도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살인범이 자라난 가정을 들여다보면 부모가 저지른 잘못을 대번에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략) 범죄가 부모탓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는 데 첫째로 심한 학대와 방치를 겪었을 때 취약한 사람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은 강력한 이유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이런 재앙을 겪을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 두사람은 정말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설 무렵에는 콜럼바인 학살을 일으킨 정신이상은 어느 가정에서라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 내 아이를 이토록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로 키우지 않겠지, 부모는 뭘 잘못한 걸까?'라는 생각으로 글을 읽어내려갔지만 딜런의 엄마는 사랑이 많고 바른 사람이었다. 또 섬뜩할 만큼 딜런의 어린 시절은 나의 첫 째 아이의 모습과 같았고, 나의 조카의 모습, 내 주변 아이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아이도 그럴 수 있겠구나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17살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잃었다. 그 후 '살인마의 부모, 역사상 최악의 엄마'라 불리며 세상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원망하지 않고 16년 동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기억나느 ㄴ사건들과 일기에서 단서를 찾으려고 애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살 예방을 위한 봉사와 뇌 문제에 관한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자녀를 잃은 부모들을 위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부모를 찾아가 사죄하거나 편지를 써 마음을달래기도하고 같은 처지에 놓인 부모들을 만나 돕는 일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대하는 그녀의 바른 성품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동발달과 아동심리를 공부하고 무엇보다도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인권과 예절에 대해 잘 가르쳐왔다고 믿어왔다고 했다. 


" 시간이 흐르면서 딜런이 스스로 남들에게 자기 혼자 힘으로 잘해나간다는 확신을 주려고 했던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딜런이 어릴 때부터 보였던 타고난 성격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그런 면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딜런이 삶의 막바지에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할지 몰랐으니 말이다. "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머리에 남아 신경이 쓰이던 구절이다. 책도 보고 전문가의 강의도 보며 나름 양질의 육아를 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잘' 키우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아야만 했다. 완벽한 육아를 했던 딜런의 엄마가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아픔을 완벽하게 숨기고 연기할 수 있는 아이로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딜런이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철저히 숨기고 마음 속 괴물을 만들어 많은 사람과 자신의 삶을 끝낸 원인은 아이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완벽하게 자랐음에 만족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큰 트러블 없이 잘 자랐겠지만 자신의 실패나 좌절을 건강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방법은 가르치지 못한 것 같다. '스스로 잘하는 아이'라 무엇이든 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부모에게 자신이 힘든 상태이니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딜런의 엄마는 결국 키우기 쉬운 아이로 자란 딜런의 깊은 우울감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 녀석들이 언젠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순간에 나를 떠올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 적이 있다.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아린다. 


" 우리 아들이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도 저지른 것이지만 우리에게 단 한마디 설명도 없이 그랬다는 게 더 아팠다. 메모 한장이라도 남겼다면, 아무리 간략한 것이라도 달랐을 것이다. " '어떻게 아이가 그런 계획을 세우는데 모를 수가 있어요?'라는 질문이 가장 가슴 아프고,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했다. 엄마들은 아이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가해자를 두둔하고 싶을 만큼 납득이 된다.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하나 있다. 총기사건이 있기 전 딜런은 또다른 가해자인 에릭과 사고를 친 적 이있다. 그 후 한동안 딜런의 방을 뒤지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했다. 그리고 안심을 하고 잠시 멈췄고 그 후 총기사건이 일어났다. 딜런의 엄마는 아이 방을 뒤지는 것을 중단했기 때문에 대학살을 미리 막지 못한 것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말썽 이후 방을 뒤진 행동이 딜런의 마음을 멀어지게 했고, 비극을 더욱 완벽한 계획 속에 준비할 수 밖에 없도록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삼엄한 경계 속에서 우리의 사고와 감각은 더욱 예민하고 치밀해질테니 말이다. 


훌륭한 아이를 만들기 휘한 육아책이 범람한다. 나도 나쁜 엄마 마케팅의 호구로 좋은 엄마가 되어 좋은 아이를 만들기 위해 육아서적을 사들인 사람이다. 육아에 정담은 없겠지만 적어도 전문가들이 말한 방법으로 아이를 키우면 내 아이만큼은 잘 자랄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아이를 어떠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보다 함께 호흡하고 사는 동안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지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감정을 읽고 편안하게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겪게 될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자신을 건강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딜런을 꼭 안아주고 싶다는 표현에 가슴이 먹먹하다. 그저 뜨겁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딜런은 다른 선택을 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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