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저자 수클리볼드 / 역자 홍한별 
출판사 반비 
출판일 2016.07.15

원저 A Mother's Rockoning 


참으로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 책장을 열었다. 1999년 4월 20일,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는 뉴스다.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13명이 사망했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가해자 두명은 그 자리에서 자살을 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엄마가 써내려간 이 책은 읽는 내내 엄마인 나의 가슴을 후벼팔만큼 그녀의 후회와 슬픔, 사랑과 절망의 감정들이 너무나 섬세하고 짙게 표현되어 읽는 내내 마치 내 아이가 저지른 사건인양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청소년기의 감정, 자살 충동과 우울증, 가해자의 가족에 대한 태도 등 더 깊게 고민하고 싶은 내용이 많은 책이지만 이 글에서 '완벽한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녀를 인터뷰한 심리학자 앤드루 솔로문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결함이 드러나면 언제나 사람들은 모두 부모를 비난해 왔다 (중략)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부모의 태도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살인범이 자라난 가정을 들여다보면 부모가 저지른 잘못을 대번에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략) 범죄가 부모탓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는 데 첫째로 심한 학대와 방치를 겪었을 때 취약한 사람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은 강력한 이유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이런 재앙을 겪을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 두사람은 정말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설 무렵에는 콜럼바인 학살을 일으킨 정신이상은 어느 가정에서라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 내 아이를 이토록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로 키우지 않겠지, 부모는 뭘 잘못한 걸까?'라는 생각으로 글을 읽어내려갔지만 딜런의 엄마는 사랑이 많고 바른 사람이었다. 또 섬뜩할 만큼 딜런의 어린 시절은 나의 첫 째 아이의 모습과 같았고, 나의 조카의 모습, 내 주변 아이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아이도 그럴 수 있겠구나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17살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잃었다. 그 후 '살인마의 부모, 역사상 최악의 엄마'라 불리며 세상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원망하지 않고 16년 동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기억나느 ㄴ사건들과 일기에서 단서를 찾으려고 애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살 예방을 위한 봉사와 뇌 문제에 관한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자녀를 잃은 부모들을 위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부모를 찾아가 사죄하거나 편지를 써 마음을달래기도하고 같은 처지에 놓인 부모들을 만나 돕는 일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대하는 그녀의 바른 성품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동발달과 아동심리를 공부하고 무엇보다도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인권과 예절에 대해 잘 가르쳐왔다고 믿어왔다고 했다. 


" 시간이 흐르면서 딜런이 스스로 남들에게 자기 혼자 힘으로 잘해나간다는 확신을 주려고 했던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딜런이 어릴 때부터 보였던 타고난 성격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그런 면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딜런이 삶의 막바지에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할지 몰랐으니 말이다. "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머리에 남아 신경이 쓰이던 구절이다. 책도 보고 전문가의 강의도 보며 나름 양질의 육아를 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잘' 키우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아야만 했다. 완벽한 육아를 했던 딜런의 엄마가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아픔을 완벽하게 숨기고 연기할 수 있는 아이로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딜런이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철저히 숨기고 마음 속 괴물을 만들어 많은 사람과 자신의 삶을 끝낸 원인은 아이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완벽하게 자랐음에 만족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큰 트러블 없이 잘 자랐겠지만 자신의 실패나 좌절을 건강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방법은 가르치지 못한 것 같다. '스스로 잘하는 아이'라 무엇이든 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부모에게 자신이 힘든 상태이니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딜런의 엄마는 결국 키우기 쉬운 아이로 자란 딜런의 깊은 우울감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 녀석들이 언젠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순간에 나를 떠올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한 적이 있다.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아린다. 


" 우리 아들이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도 저지른 것이지만 우리에게 단 한마디 설명도 없이 그랬다는 게 더 아팠다. 메모 한장이라도 남겼다면, 아무리 간략한 것이라도 달랐을 것이다. " '어떻게 아이가 그런 계획을 세우는데 모를 수가 있어요?'라는 질문이 가장 가슴 아프고,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했다. 엄마들은 아이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가해자를 두둔하고 싶을 만큼 납득이 된다.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하나 있다. 총기사건이 있기 전 딜런은 또다른 가해자인 에릭과 사고를 친 적 이있다. 그 후 한동안 딜런의 방을 뒤지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했다. 그리고 안심을 하고 잠시 멈췄고 그 후 총기사건이 일어났다. 딜런의 엄마는 아이 방을 뒤지는 것을 중단했기 때문에 대학살을 미리 막지 못한 것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말썽 이후 방을 뒤진 행동이 딜런의 마음을 멀어지게 했고, 비극을 더욱 완벽한 계획 속에 준비할 수 밖에 없도록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삼엄한 경계 속에서 우리의 사고와 감각은 더욱 예민하고 치밀해질테니 말이다. 


훌륭한 아이를 만들기 휘한 육아책이 범람한다. 나도 나쁜 엄마 마케팅의 호구로 좋은 엄마가 되어 좋은 아이를 만들기 위해 육아서적을 사들인 사람이다. 육아에 정담은 없겠지만 적어도 전문가들이 말한 방법으로 아이를 키우면 내 아이만큼은 잘 자랄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아이를 어떠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보다 함께 호흡하고 사는 동안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지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감정을 읽고 편안하게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겪게 될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자신을 건강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딜런을 꼭 안아주고 싶다는 표현에 가슴이 먹먹하다. 그저 뜨겁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딜런은 다른 선택을 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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