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의 어느 날 작성한 글 - 


운전할줄 아시나요? 저는 운전을 꽤 오래 했습니다.  강의를 하며 매일 500키로 이동은 예사고, 졸면서도 130키로 고속도로를 달릴만큼 이제 운전은 저에게 쉬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지난주 강원도에서 강의를 마치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왔을 때, 본넷에서 연기가 나고 도로 한 가운데에서 차가 멈추는 아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계속된 장거리 운전으로 과열된 차의 라지에이터가 터지고 엔진에 이상이 생긴거죠. 삐그덕거리고 잔고장이 많아진 낡은 차를 큰돈 나가는 것이 싫어 바꾸지 않고 계속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전 새 차를 구입했습니다. 새 차에 올라탄 저는 처음 운전을 배웠던 순간처럼 큰 한숨을 내뱉어야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브레이크 느낌, 복잡한 버튼, 비슷한 듯 다른 조작 방법은 차를 받은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를 긴장시키죠. 저의 10년 강의 인생 또한 그랬습니다. 오랜시간동안 대학생들을 만나 온 저는 졸면서도 운전이 가능했던 것처럼 대학생들과 함께하는 무대에서는 정해진 시간을 얼마든지 때울 수 있을만큼 무대 위에서 자유롭습니다. 돈만 준다면요~. 허허허. 하지만 제 속의 삐그덕 거림, 낡아 고쳐져야하는 것을 무시한채 그저 쉽고 익숙한 것들을 찾아 달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제가 그동안 대학생들을 만나온 이유는 그들을 만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눈 감고도 운전할 수 있을 만큼 제가 아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던 것이 바로 대학생들이었으니까요. 또한, 기업 교육을 하는 동안 아무도 ‘인생의 굴곡 없는, 어린, 여자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4살, 저는 굉장히 작고 어린 강사였습니다. 교육생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내공보다는 화려한 PPT와 웃긴 동영상이 제 강의인생을 연명해 온 비결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부들의 재취업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할 수 있다! 아줌마라고 안 되는 거 아니다!!’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3개월 간의 교육을 마치고 강의장을 나왔습니다. 방청객 본능을 가진 아주머니들과의 교육은 강사를 즐겁게 하죠. 강의가 성공적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 나오는데 어떤 분이 제게 웃으며 질문을 하십니다. “강사님, 아직 미혼이시죠? 애가 없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거에요.” 3개월 동안 연신 고개를 끄덕였던 교육생들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있었다니! 10년 무사고 운전자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면허 취소를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역시 아줌마들은 어쩔 수 없어, 그러니 사회에서 아줌마들을 싫어하지!’ 씩씩거렸고 다짐을 했습니다. ‘어서 애를 낳자!’ 


그리고 저는 제 강사 인생의 전진을 위해 악셀레이터를 밟았고, 급기야 얼마 전에는 정말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젠 슈퍼카든 덤프 트럭이든 뭐든 몰 수 있다!’ 이제 아줌마를 만나러 갈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애를 낳고 나면 그 누구보다도 멋진 모습으로, 새로운 컨텐츠로 무대에 서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육아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더군요. 밥한끼 챙겨먹기 어려워 밥통 옆에 서서 김 몇개 겨우 싸먹을 정도였습니다. 집은 폭탄 맞은 것 같았죠. 아이가 어느정도 잘 자고 잘 먹게 된 8개월 쯤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새로운 컨테츠는 커녕, 만만하다던 대학생 교육을 하고도 강의장을 도망치듯 뛰어나오게 되었습니다. 강사로서 전진을 위해 뭐든 해오며 살았는데, 전진은커녕 되레 후퇴를 한 것 같았습니다.  낡은 차를 탄 채 말이죠

 

방법을 찾아야했습니다. 새로운 강의를 만들려고 보니 답답하고 느려터진 꼬물 노트북이 불만스러워졌습니다. 빠른 컴퓨터를 갖게되면 창의력이 퐁퐁 솟아나 예쁜 자료들이 나올 것 같아 남편을 졸라 맥북에어를 구입했죠. 일주일 재밌더군요.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대학교에서는 호환이 되지 않아 사용할 수가 없답니다. 기업체 강의를 가고싶어졌습니다. 맥북에어를 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대한민국 아줌마의 악바리 근성을 가지고 얼마 전, 그토록 바라던 기업교육에 출강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엔 맥북에어는 호환되었고,  예전의 24살 어린 여자 강사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조금 늙고, 몸매가 살짝 맛이 간 저는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져 있었습니다. 그 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제 프레젠테이션 화면이나 웃긴 동영상보다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을요. 수 년 전, 제게 질문을 던진 아주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그 날의 제 강의에는 ‘우리의 이야기’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젠 제 자신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맥북에어가 아니라. 저는 이제 익숙한 곳에서 내려와 새로운 무대를 경험하기 위해 저를 조금 낯선 곳으로 옮겨가려고 합니다. 아마 한마디를 건네기 위해 수만가지 생각을 해야하고 말을 더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생에게 질문하기까지 등줄기에 수많은 땀을 흘려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우리 삶의 모든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매일매일 새롭게 운전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저 자신도 새롭게 만들고, 그렇게 터득한 저만의 운전법으로 사람들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드릴 나의 이야기가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Recent posts